후성유전학적 유전 - 스키너교수

로봇 & 과학|2019. 8. 9. 16:15

아버지의 죄? 

흥미로운 사실은 스키니 교수를 비롯해 많은 연구자들이 후성유전학전 유전을 규명하는데 엄마보다는 아빠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즉 임신을 통한 영향은 다른 요인으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는 반면에 정자로 유전정보만 주고 끝나는 부계로는 후성유전학적 요인을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한다는 것이다.


네이처 2014년 3월 6일자에는 '아버지의 죄The Sins of the Fathe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바로 부계를 통해 유전되는 후성유전학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들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4년 1월 <네이처 신경과학>에 발표된 논문은 특정 자극에 대한 공포가 후성유전학적으로 유전된다는 연구결과를 싣고 있다.


즉 수컷 생쥐를 아세토페논acetophenone이라는 아몬드 냄새가 나는 물질에 노출시킨 뒤 발에 충격을 주는 실험을 반복하면 생쥐는 아세토페논 냄새만 맡아도 공포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이 수컷 생쥐와 이런 학습을 한 적이 없는 암컷 생쥐를 교배해 나온 새끼 가운데 다수가 아세토페논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 새끼의 새끼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구자들은 3세대에 걸친 생쥐들을 해부한 결과 아세토페논에 민감한 뉴런이 있는 부분이 평균보다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아세토페논은 도대체 어떤 경로로 자신에 민감한 뉴런의 성장을 촉진하는 신호를 여러 세대에 걸쳐 전달할 수 있었을까.


흥미롭게도 이들 생쥐에서는 아세톤페논과 결합하는 후각수용체의 유전자인 Olfr 151이 많이 발현됐다. 즉 아세토페논이 어떤 식으로든 작용해 수컷 생쥐의 정자 게놈에서 Olfr 151 부근의 화학적 변이(메틸화 감소)를 일으켜 유전자 발현이 더 잘되게 했고 이 구조변이가 후세에서도 유지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아세토페논이 자신이 결합 하는 수용체 단백질의 유전자를 꼭 집어 후성유전학적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사실 '세대를 이어가는 후성유전학적 유전의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 Carl von Linne는 1740년대 좁은잎해란초(학명 Linaria vulgaris)라는 식물의 견본을 조사하다 이상한 개체를 발견했다. 다른 부분은 똑같은데 유독 꽃 모양만 달랐던 것이다. 꽃 구조를 식물 분류의 기준으로 삼았던 린네로서는 당황스러운 현상이었다. 린네는 이 변이에 페롤리아 peloria 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리스어로 괴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250년이 흘러 영국 존인스센터의 식물학자 엔리코 코엔 Enrico Coen 박사팀에서 마침내 페롤리아의 비밀을 풀었다. 즉 괴물 식물에서는 꽃구조 형성에 관여하는 Lcyc이라는 유전자가 염기서열은 동일했지 만 DNA에 화학변이(메탈화)가 많이 일어나 완전히 작동을 멈춘 것이다. 그 결과 꽃이 기형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변이는 세대를 통해 유전됐기 때문에 페롤리아에서는 페롤리아만 나왔다. 이 연구결과는 1999년 〈네이처>에 실렸다. 결국 '세대를 이어가는 후성유전학적 유전은 동식물에 걸쳐 존재하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20세기 중반 무분별하게 사용된 DDT와 같은 화학물질은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후손들의 DNA에 흔적을 남겨 현대인들에 만연한 각종 대사질환과 불임의 한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 


스키너 교수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기고한 글에서 오늘날 서구사회에 만연한 비만과 당뇨병 등 대사질환을 생활습관이나 식단변화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언급하면서 과거 DDT나 다이옥신, 비스페놀과 같은 화학물질에 과다하게 노출된 경험이 있는 인류가 이런 질환에 취약하게 후성유전학적으로 변이가 일어난 게 또 다른 원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는 불임 역시 결혼시기가 늦어진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후성유전학을 적용하면 잘 맞아 떨어진다.


스키너 교수는 “세대를 이어가는 후성유전학적 유전은 아마 최근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큰 패러다임의 전환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학자들은 아직은 불확실하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이게 진실일 경우 그의 말대로 생물학을 혁신하는 놀라운 발견이다. 인류가 그동안 해온 일들이 우리 DNA에 남긴, 그리고 후세에도 전달될 표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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