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정보 과학] 에르빈 슈뢰딩거

로봇 & 과학|2019. 5. 23. 18:40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에르빈 슈뢰딩거가 하이젠베르크의 라이벌로 등장합니다. 



에르빈 루돌프 요제프 알렉산더 슈뢰딩거(1887년 8월 12일 - 1961년 1월 4일)


슈뢰딩거 방정식을 비롯한 양자역학 에 대한 기여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입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또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 실험을 제안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슈뢰딩거는 집에서 가정 교사를 통한 개인 교습을 받다가 1898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세운 왕립 학술 김나지움(k.k.Akademisches Gymnasium) 입학 시험에 합격하였고, 1906년 7월 11일 김나지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내에 있는 어떠한 대학교에 자유롭게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다고합니다.

1906년 가을, 슈뢰딩거는 빈 대학교 물리학부에 입학하였고, 이론물리학 전담교수인 프리츠 하제뇌를(Friedrich Hasenöhrl) 교수와 실험물리학 전담교수인 프란츠 엑스너 교수의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슈뢰딩거는 1907년 가을, 비정기 학술발표회에서 하제뇌를이 발표한 루트비히 볼츠만의 이론을 정리하고 발전시킨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슈뢰딩거는 1910년 5월 20일 물리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1913년에는 실험물리학 교수였던 엑스너 교수와 공동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장교로써 남부 전선에 종군하면서 논문을 출판하였습니다. 예나 대학교 조교수, 취리히 대학교 교수,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경력이 있습니다.  1933년에는 나치가 독일에 집권하게 되자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1936년에 돌아와 그라츠 대학교 교수가 되었습니. 다그러나 나치 독일 오스트리아 병합하자 이번에는 로마로 망명하였습니다.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아일랜드에 가서, 1940년에는 더블린 고등연구소의 이론 물리학 부장이 되었으며, 1956년에 은퇴하고 조국에 돌아와 빈 대학교 명예 교수가 되었습니다. 



보어는 전자를 궤도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보어의 제자인 하이젠베르크는 그 궤도를 없애 버렸는데요, 슈뢰딩거가 파동개념으로 다시 궤도를 살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전자는 파동이다' 라는 전제하에 방정식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은 물리학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데 성공합니다. 왜일까요?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으로 계산하기 위해서는 수학공부를 다시 해야할 판이었습니다.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은 물리학자들에게 익숙한 미분,적분 이었습니다. 이 방정식을 본 보어는놀라워했고,아인슈타인도 크게 칭찬했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슈뢰딩거의 방정식은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똑같은 결과를 내게 됩니다. 행렬역학과 똑같은 결과를 내고 물리학자의 지지도 있고. 슈뢰딩거가 주도권을 완전히 잡게되는데요.


이러한 결과를 낸 슈뢰딩거가 힌트를 얻은 것은 아인슈타인이크게 칭찬한 논문이었습니다. 그 이론은 당연히 입자라고 생각됐던 전자가 '파동의 성질까지 갖고 있다'는내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물리학은 파동은파동, 입자는 입자로 따로 분리해서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양자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중슬릿 실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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