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 서니베일 지역이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이유

로봇 & 과학|2019. 8. 30. 14:28

조용한 과수원 지역이덩 실리콘 도시중 서니베일지역이 1960년대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로 급격히 탈바꿈한 데에는 그게 두 가지 계기가 있다.



첫 번째 : 1955년 고체물리학자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가 마우틴뷰에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 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를 설립


쇼클리는 미국 동부 뉴저지 New Jersey 주의 벨 연구소ATZO 2017 AT&T Bell Laboratories에서 1947년 12월에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개발팀을 이끌었고, 그 공로로 연구원인 존 바딘John Bardeen,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과 함께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괴팍한 성격과 인생 후반기의 특이한 행적으로 쇼클리는 과학자로서의 천재성과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 


아무튼 쇼클리가 트랜지스터를 사업화하려고 설립한 반도체 회사는 결국 실패로 끝났으나 그 과정에서 쇼클리는 자신이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실리콘 밸리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번째 :  쇼클리의 회사에서 근무하던 핵심 연구 인력 여덟 명이 쇼클리의 성격과 회사 운영방침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사표를 내고 나와 1957년 페어차일드 반도체 Fairchild Semiconductor를 팔로알토에 설립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출현은 곧 반도체 기술혁명의 기폭제가 되었고, 산타클라라 밸리가 짧은 기간에 첨단기술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트랜지스터 상용화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반도체 기술 발전의 획기적 전기를 이룬 집적회로 integrated circuit를 발명하는 등 196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반도체 산업에 불이 붙자 1960년대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근무하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산타클라라 밸리는 기술과 산업의 중심지로 바뀌었다. 미국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인텔Intel, 내셔널 세미컨덕터 (National Semiconductor, 2011년 'TI에 흡수 합병), AMD (Advanced Micro Devices) 등을 포함해 대략 40여 개 회사가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파생되어 산타클라라 밸리에 설립되었다. 이 회사들을 일컬어 페어칠드런Fairchildren 이라고도 하는데, 이 40여 개 회사에서 또다시 파생된 손자뻘 회사들까지 헤아리면 당시 이 지역 대다수의 반도체 회사가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인연이 있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실리콘 밸리 회사들의 원조가 페어차일드 반도 체이고, 또한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설립된 1957년을 실리콘 밸리의 원년으

로 삼은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과수원이 늘어선 한적한 산타클라라 밸리가 어느 날 갑자기 쇼클리와 페어차일드 반도체 덕분에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은 아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전기 및 전자 기술이 발달한 샌프란시스코 반도에서 실리콘 밸리의 탄생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산업 발전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었 다.이 지역은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와 맞물려 19세기 후반 고압송전 등 전력산업은 물론,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인 1910년대를 전후해 미국 해군 함정간 무선통신의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처럼 샌프란시스코 반도는 레이더 등 군수용 연구와 상업용 통신산업이 일찌감치 발전하기 시작했다. 1912년에는 세계 최초로 상업용 라디오 방송국이 샌호세에 설립되

어 방송을 시작했다. 1906년 리 디포리스트Lee de Forest가 삼극 진공관을 발

명한 뒤 상용화에 성공해 본격적인 전자기술 시대를 연 것도 산타클라라 밸리에서였고, 이후 휼렛 패커드HP 사의 설립으로 이어져 실리콘 밸리 탄생의 토양을 다졌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 전자산업의 발전과 훗날 실리콘 밸리의 탄생과 관련하여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의 설립과 그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캘리포니아에서 골드러시가 한창인 1850년대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해온 릴런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는 금으로 일확천금하겠다는 꿈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철도사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었고,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그는 정치에도 수완이 있어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했다. 그가 1891년 팔로알토에 설립한 스탠포드 대학교는 훗날 실리콘 밸리의 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지금까지 실리콘 밸리의 지속적인 성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실리콘 밸리 탄생에는 1944년부터 1958년까지 스탠포드 대학교 공대 학장을 지낸 프레더릭 터먼이 중요한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일찍이 대학과 기업 간 산학협동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며, 스탠포드 대학교 캠퍼스 외곽에 스탠포드 산업단지Stanford Industrial Park를 조성해 첨단 기업들을 유치하고 스탠포드 대학 교수·학생과의 교류로 산학협동을 활성화했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에게 창업과 기업가 정신을 불어넣었고, 그의 지도와 영향으로 월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는 스탠포드 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캠퍼스 건너편 팔로알토 주택가의 가정집에 세를 얻어 그 집 차고에서 1939년휼렛 패커드 사Hewlett Packard Company를 창업했다.


1950년대 중반 터먼은 반도체 사업을 하려고 회사 부지를 찾던 쇼클리에게 스탠포드 대학교 근처 마운틴뷰에 회사를 설립하라고 설득해 실리콘밸리가 산타클라라 밸리에서 태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터먼은 1973년 우리 정부가 한국과학원(지금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설립할 때 자문을 해주어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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